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중동계와 동남과 동북아시아계..남미와 북미 등으로 세분화 시키고 나누어 구분한다.
이렇게 나누고 분류하는 것은 지역적인 이유로 행정적인 이유나 생물학적인 이유에서든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함이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결과적으로 "차별"이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흔히들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의 차별을 가장 비중있게 말하곤 하지만 그것의 역차별,혹은 유색인종 간에도 차별은 존재하고 어찌보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도 있다.
이런 차별이 생기게 된 까닭에는 교육을 통해서 일 수도 있을 것이며,개인적 경험에 기초할 수도, 사회 일각에서 들려오는 언론이나 단체의 영향일 수도 있다. 새뮤엘 헌팅턴 저자의 문명의 충돌에서는 좀 더 전문적으로 인종 간의 서로 다른 종교,문화권 속에서 발생한 의식의 차이 탓에 필연적으로 충돌을 야기시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지"에 있다.
모른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무경험에서 근거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지의 존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야기시키고 그것이 곧 차별로 이어진다.
영화 크래쉬에서 등장하는 8쌍의 커플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여러 인종들이 두루 퍼져 살고 있는 다인종사회이다. 충분히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느낄 수 있는 지리적 요건 속에 있지만 그들의 내면 속에는 이미 서로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그 차별의 원인을 서로 상대방에게 돌리고만 있다.
그들 모두 분명 차별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서로를 차별한다.
그들의 차별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존재한다.
백인이 오랜 세월 동안 흑인을 차별해 왔으니까,내가 백인 것을 훔치는 것은 정당하다.
흑인의 범죄율이 백인에 비해 높으니까 저들 역시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남미인들은 게으르고 돈만 밝힌다고 익히 들어왔으니까,네가 말하는 것은 내게 돈을 뜯어내려는 심산이다.
이라크는 우리나라에 대한 테러국가니까 너희 중동인들도 똑같다.
이것은 그들 자신에겐 분명한 이유지만 결국은 어설픈 지식과 경험,즉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의 산물이다. 우연히 겪은 단 한 두번의 경험으로 60억 개개인에 대한 가치판단으로 삼기에는 그 신뢰성이 너무나 떨어짐이 분명함에도 그 경험을 그 인종에 대한 전부로 인식해 버리고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들어왔을 사건의 원인을 상대방의 피부색으로 돌리기에 급급하다.
이런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결국 좀 더 상대방과 충돌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진부한 논리지만 어쩌겠는가 그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독한 인종주의자가 어느 순간 다정한 박애주의자가 되는 것은 살아오면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아온 경험의 결과물일 뿐이지 결코 기적따위나 누군가의 설득에 의함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크래쉬는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다인종국가, 미국 안에서 뿌리깊이 퍼져있는 일상 속의 인종차별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단일민족권이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타인종에 대한 무지의 정도는 여러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저 나라 못지 않게 나타나고 있으며 또 우리 내부에서도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그 차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우리가 남이가"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