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다아빠 2007. 8. 7. 13:23

예전엔 방학때만 되면 사촌형 집에 꼭 며칠 씩 놀러가곤 했다. 낮엔 여기저기 쏘다니며 놀다가 밤이되면 열대야를 피해 거실에 모여누워 잠을 청하기전 들려주시던 어른들의 괴담을 듣고 나면 한동안 화장실 근처에 조차 가질 못했던 기억이 난다.

 눈에 보이는 다른 영상적 정보가 없이 순수하게 청각만을 자극하던 그 이야기들..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흔한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그 괴담들이 왜그리 오금을 지리게 만들었을까..

 사랑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또한 무섭기도 하다. 집착과 질투..그리고 흔치않은 네크로필리즘까지 무서운 사랑이야기들을 "기담"은 1940년대, 가장 혼란스러울 전쟁이 끝나기 직전의 경성의 한 병원을 배경으로 세가지로 나누어 교차하면서 천천히 심도있게 풀어나간다.
 그간 한국호러영화가 다양하고 신선한 소재들을 가지고서도 혹평을 면치 못했던 것은 호러영화가 무서운 연출만 있으면 상관없다는 식의 이야기의 부재에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마치  SF영화가 이야기보단 CG만 멋있으면 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차라리 SF영화는 CG만 멋있어도 상관없는 경우가 있지만 호러라는 장르는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 할머니,고모,이모께서 들려주시던 괴담들도 핏빛이 흥건한 시각적 영상이나 소름끼치는 굉음이 없어도..그리고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정도의 결말까지 예측가능함에도 그 결말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가 나를 더 사로잡았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기담은 장화,홍련과 알포인트 이후 암담하기만 했던 한국호러영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면서 기묘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짧고 강한 호러연출과 더불어 가장 무서운 "이야기"에 충실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덧: 개인적으로는 에피소드2가 가장 맘에 듭니다. 엄마귀신 최고~~아이~무서워~~>.<

덧2: 고주연양..공포에 떠는 연기는 제가 같이 동화될 정도로 실감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