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그외영화

오래된 정원(The Old Garden,2007)

루다아빠 2007. 1. 6. 02:35
그저 신나게 사랑만 하는 것도 벅찬 시대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신나게 사랑만 하기엔 여전히 버거운 세상이지만 요즘처럼 연애에 관련된 필요충족요건 등을 따지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억압받던 시대에 좀 더 알고있다는 사실 하나로 자신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세상에 미안하게 되던 시대..

그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사진과 동영상 등의 정보만 가지고 광주민주화 운동과 5공군사독재시절에 대해서 떠들어왔을 뿐인 나는 단지 이 영화를 통해서만으로 진정 그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한다.

너무 어렸기에 몰랐을 그 아픔을 영화 속에서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86년 건국대 사태 속의 화염병과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시위대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곤봉세래,부당한 노동현실에 항거하는 민중들에게 뿌려지는 물대포씬과 분신자살의 장면을 통해 그저 영화의 "백미"로 칭하며 간접적으로 밖에 공감할 수 없음에 나 역시 시대와 영화에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수개월 간의 도피생활의 끝으로 결국 붙잡혀 17년을 살다 나온 현우..그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교도소주임 말처럼 많이 좋아진 듯 하다. 수십년 에 재회한 사람들도 제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자신의 어머니는 강남 부동산 부자로 일어나 1300만원여의 옷을 거침없이 사주는 재력을 갖추었고..누군가는 재빠르게 줄을 잘 타서 그럴싸한 권력을 손에 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은 그때 그 시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술에 취해 그때의 분노를 토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한 때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떠난 그녀와의 추억의 흔적을 따라 갈뫼를 찾는 현우..영화의 초점은 현우와 윤희 두사람에게 맞춰져 있지만 사회주의도 군사독재에서도 한 걸음 떨어진 윤희의 시선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되짚어가는 시대상은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 386세대들의 초상화이자 동시대에 살고 있었으나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과거이기도다.

현우네들이 목숨 걸고서 목터지게 외쳐왔던 "모두가 다 잘사는 세상"은 이루어졌는지..또 그런 사회적 신념에 가득차 불구덩에 뛰어드는 사람을 그저 뒤에서 바라만 보며 희생아닌 희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역시 그 댓가를 보상받을 수 있었는지..
얼핏 나와 비슷한 세대를 대표하는 은결의 신세대 다운 화려한 모습과 밀레니엄을 알리는 번창한 빌딩 정글 조명들 사이에서 그 분들의 피는 보상받은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역사상 다시 없을 철권독재자 박정희 향수는 더욱 그향이 짙어만 가고 공식적으로만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은 천수를 누리며 권력가들의 비호아래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으며 아예 합천에는 기념공원이 생기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시절 운동권출신으로 이름날리던 한 국회의원은 바로 자기자신들을 탄압하던 세력의 일원이 되어 대선출마를 다짐하며 새해 첫날 부터 전두환에게 새배하러 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미래의 인권변호사가 농담처럼 던진 "전두환을 죽여버리자"가 실현될..뻔하다가 안되버렸기에 세상은 여전히 "그들"이 천년만년 해 처먹게 될 것이라는 영화 속 대사가 유독 뇌리에 남는다.